간추린 오늘의 역사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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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조선 민국 임시정부'각료발표
1919년 4월 천도교도들이 국내에서 조직하려 했던 임시정부. 발단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손병희가 1910년대 말에 민간정부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한 것으로, 1919년 3.1운동으로 인한 체포로 주장이 실현되지 못하자 나머지 천도교인들이 '조선민국임시정부포고문'을 포함한 두 개의 문서를 서울에 배포하면서 다시 한 번 필요성을 설파했다.

문서를 살펴보면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등이 쓰여져 있으며, 전반에 근대적인 정치의식이 깔려 있다. 다만 문서가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해 종이정부로 끝을 맺게 되었다.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천도교 간부들은 1910년대말에 이미 민간정부 형태의 국민국가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으나, 이들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체포·투옥되자 그해 4월 19일 나머지 천도교도들이 조선자주당연합회와 조선국민대회의 명의로 된 '조선민국임시정부포고문'과 '조선민국임시정부창립장정'을 서울 시내에 배포했다.

조선민국임시정부의 포고문은 1919년 4월 10일자로 작성된 것으로, 이를 통해 조선민국임시정부의 주요내용을 알 수 있는데 전문에서는 임시정부 수립의 필연성을 천명했다. 임시정부의 구체적 내용과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조선민국임시정부창립장정'에 의하면 이 정부 또한 다른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민주적 정부형태(도령부와 내각의 양원체제)로 국민국가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근대적 정치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조선민국임시정부는 전단정부로서, 실체가 구성되지 못한 채 다만 문서로서 끝났다.

1970년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
입주 한달도 안된 서울 와우아파트 붕괴 사망33명 김현옥 서울시장 사표
3ㆍ1고가도로, 강변도로, 남산 1ㆍ2호 터널 등 불도저식 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숨가쁘게 이어지던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 20분,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와우시민아파트 한 동(棟)이 폭삭 주저앉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직 새벽잠이 덜 깬 주민 70여 명 중 33명이 압사하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개월 전 준공된 5층짜리 와우아파트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달동네 재개발사업의 효시였지만 이 사고로 부실공사의 대명사가 됐다. 건물을 60도나 경사진 와우산 중턱에 세운데다 기둥에 쓰인 철근도 규격보다 적고 시멘트 배합량도 기준에 미달하는 날림공사가 원인이었다.

준공된 지 4개월 밖에 안된 와우아파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지반을 만천하에 까발린 계기가 됐고 무리한 고속개발에 대한 첫 대규모 경고음이었다. 결국 서울시의 무사안일과 눈앞의 이익에 만 급급한 건설업자의 과욕, 여기에 사회전반에 만연된 고속성장에 대한 조급증과 안전불감증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1975년 대법원 인혁당재건위사건 확정판결
1975년 4월 8일 오전 10시 세계의 관심이 우리나라 대법원에 집중되었다. 하급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8명(여정남·도예종·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우홍선·송상진)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공판일이었다. 독재체제에서 군법회의는 이름만 법정이었다. 8명의 공소사실은 어떤 증거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정보부 요원의 고문을 통해 얻었으리라 추정되는 진술서가 증거의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의 양심을 기대한 피고인의 가족, 기자단 등 70명이 재판장에 들어섰고 긴장감이 흘렀다. 재판은 10분의 판결문 낭독만으로 끝났다. 대법관 13명 중 이일규 대법관만이 판결에 반대했다(74도3323판결).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이라 불리는 이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정남은 재판장을 향해 "영광입니다"라고 말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15년형을 선고받은 법정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고 말한 것처럼 정남은 자신이 역사의 법정에서 승소하였음을 확신했다. 안타깝게도 카스트로는 석방되어 독재정권을 무너트렸지만 여정남은 불과 18시간 뒤에 사형당했다.

국가폭력은 재판과 사형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유가족들은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요시찰 대상으로 분류돼 감시를 받았다. 이들은 신체의 자유를 비롯해 거주이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까지 침해당했다. 시장에 갈 때면 경찰관이 따라붙었고 집 앞 도로변에 대놓고 초소를 만들어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경제적 보복과 집단 따돌림이었다.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던 그 시절 남편들의 구속은 가계 빈곤을 유발했다. 남편의 변호 활동을 위해서 아내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형이 확정된 이후에는 연좌제로 직장을 잃거나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희생자와 유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호명되었고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부인과 자식 또한 평생 공산주의자의 낙인을 감수하며 이방인으로서 사회에서 소외된 채로 살아가야 했다.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심 공판에서 사형당한 8명의 청년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979년 충북 중원 가금면 입석리의 비 고구려비로 밝혀짐, 1979.2.25 향토사학자모임 예성동호회가 발견, 정영호 단국대교수가 판독

1991년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공포
1954년 최초 제정되었다. 종전에는 관련성이 깊은 형법과 법률용어가 비슷하였으나, 1984년 개정에서 법률 용어를 최대한 쉬운 말로 풀어쓰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예컨대 교사, 방조를 '죄를 짓도록 시키거나 도와준 사람'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식. 기본법에 해당하는 형법은 용어 개정에 보수적인 편이기 때문에, 형법을 공부하다가 이렇게 용어 자체를 바꾸어 쓰고 있는 경범죄 처벌법을 보면 오히려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니만큼, 여러 차례에 걸쳐 처벌 내용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개정 연혁을 보면 당시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2013. 3. 22. 법률 제11401호로 전부 개정되면서 지속적괴롭힘이 추가되는 한편, 전당포에 관한 사항이나 굴뚝 등 사회 변화로 인해서 거의 사문화된 사항이거나 비밀춤교습 등 처벌할 이유가 없는 사항을 삭제한 것. 과거에는 음식에 덮개를 하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 장발을 하고 다니는 행위까지도 처벌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2013년 개정에서는 스토킹 행위 중에서 일부 경미한 행위에 대한 것이 추가되었다. 해당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이는 경미한 사안으로 형법 등의 형벌로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을 경범죄처벌법 개정을 통해 '하한선'을 설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일부 용어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서 '상당한'이라는 용어를 '충분한'으로 수정했다.

일부 경범죄 중에서 조금 더 가중해서 처벌할 필요가 있는 경범죄의 유형을 나누어 형벌을 강화했는데, 기존 10만원 이하 단일항목에서 20만원, 60만원으로 처벌 가능한 행위유형도 나누어 규정했다.

1995년 한국형 원자로 울진3호기 설치
울산에 건설하고 있는 신고리 원전 3호기에 15일 핵심 설비인 원자로가 설치됐다. 이날 설치된 원자로는 작년 12월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모델과 같은 것으로, 기념 행사장에는 아랍에미리트 측 관계자들도 참석해 신형 원자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날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3호기 건설 현장에서 원자로 설치 기념행사를 열었다. 신고리 원전 3호기는 우리나라가 국가선도기술 개발과제로 199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자체 개발한 신형 경수로 원전으로, 종전의 한국 표준형 원전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개선됐다.

신고리 원전 3, 4호기는 각각 2013년과 2014년 준공을 목표로 6월 말 현재 약 54%가 지어진 상태다. 3호기 원자로를 설치하고 나면 내년 이맘때 4호기에도 원자로를 설치할 예정이다. 3, 4호기를 모두 완공하면 우리나라 전력 발전의 총 37.4%를 원전에서 얻게 된다. 신형 원자로가 최초 설치된 이날 현장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ENEC)의 모함마드 알 하마디 사장도 참석했다.

하마디 사장은 원자로의 설치 과정을 지켜보고 원자로 바닥 면에 기념 사인도 남겼다. ENEC 사장단 일행은 내일부터 2박 3일간 제주에 머무르며 한국전력 및 한수원 관계자들과 함께 아랍에미리트 원전 건설을 위한 회의를 열 예정이다. 김영학 지경부 2차관은 “신고리 원전은 한국형 원전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들에 확실한 믿음과 실체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김동성,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첫 전관왕
마지막 두 바퀴였다. 안현수의 터치를 받은 김동성이 한참을 앞서 나간 캐나다 선수의 뒤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김동성은 특유의 오른발 내밀기로 스케이트 칼날을 결승선에 통과시켰다. 불과 0.005초 차이. 1위를 달리던 캐나다 선수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2002년 4월 8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02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김동성이 6관왕을 차지하며 대회 전 종목을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전날 1,500m와 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동성은 대회 마지막 날인 8일 1,000m와 3,000m 슈퍼파이널, 그리고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까지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하며 개인종합우승을 포함 모두 6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미국의 안톤 오노와 캐나다의 마크 개뇽 등 강력한 라이벌이 불참했고 숙적이었던 중국의 리자준마저 개인전에 나서지 않아 아쉬움이 컸지만, 그의 퍼펙트 골드는 세계 쇼트트랙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기록이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기훈이 그 해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관왕에 오른 적이 있지만, 5,000m 계주가 포함되지 않을 때였다. 1976년 세계선수권이 창설된 이래 그때까지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92년 한국의 김기훈과 83년 도쿄대회 여자부의 실비에 다이그리(캐나다) 둘 뿐이었다.

몬트리올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김동성의 컨디션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2002년 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1,500m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아폴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긴 후 분한 마음에 기절까지 했던 그였다. 설욕을 다짐한 몬트리올 대회에 오노가 불참했지만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당당히 명예를 회복했다.

**2008년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러시아 소유즈우주선 타고 첫 우주비행 **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씨가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주로 비상한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씨가 탑승한 소유즈 TMA-12 우주선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 8일 오후 20시16분(현지시각 오후 5시16분)에 우주로 발사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36번째 우주인 배출 국가에 동참하며, 우주실험전문가로 소유즈에 오른이소연 씨는 세계 49번째 여성 우주인이 된다.

이소연 씨와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볼코프, 올레그 코노넨코는 발사 5시간 전에 바이코누르 발사장에 도착해 발사체와 발사대가 점검되는 동안 우주복 '소콜'을 입는다.

소유즈 우주선에 오르는 시간은 발사 2시간 30분 전. 이때가 이론적으로 탑승우주인을 교체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간혹 우주인이 탑승 전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변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발사 5분 전에는 비행시스템을 우주선에서 직접 조정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한 뒤 소유즈호는 예정된 시각에 발사될 예정이다. 발사 9분 후에는 소유즈 우주선이 발사체와 완전히 분리되며, 태양전지판을 전개하고 엔진 점화 후 비행궤도를 서서히 높여 국제우주정거장과의 랑데뷰를 시도한다.

발사체의 발사궤도경사각은 적도 평면으로부터 약 51.7도로 발사대에서 발사된 후 118초에 1단을 분리하고, 대기권을 벗어난 226초에 페어링을 분리하게 된다. 287초에 2단 로켓을 분리하고 이어서 525초에 3단 로켓을 분리하며 이 때의 고도는 약 242km로 오차범위는 ±42km이다.

오후8시16분39초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세르게이 볼코프, 올레그 코노넨코와 함께 소유즈 TMA-12호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 향해 출발. 4월19일 무사귀환했다.

2011년 북한, 현대 측에 금강산관광 독점권조항 효력취소 통보
북한은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의 효력을 취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더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망도 없다"며 "우리는 현대 측과 맺은 금강산 관광에 관한 합의서에서 현대 측에 준 독점권에 관한 조항의 효력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북측 지역을 통한 금강산 관광은 우리가 맡아 하되 해외사업자에게 위임할 수 있고, 남측 지역을 통한 관광은 현대가 계속 맡아 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현대 측에 통고하고 그에 대한 공식문건을 정식 넘겨줬다"고 말했다.

아태평화위 측은 금강산 사무소를 통해 이런 내용이 담긴 문건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현대 측은 이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인 현대아산측 관계자는 북측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 효력 취소 발표에 대해 "당혹스럽다. 최대한 빨리 구체적 내용을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중국인 관광객의 금강산 관광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중국 여행사들은 작년 5월 북한 단체관광을 시작하면서 외금강 관광을 포함한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현대 측과의 신의를 지켜 현대를 비롯한 남측 기업들의 이해관계는 물론 금강산 관광을 희망하는 남녘 동포들의 염원까지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인 안을 내놓으면서 합의를 보기 위해 마지막까지 인내성있게 노력했다"며 "그러나 현대 측과의 협상도 남조선 당국의 방해 책동으로 말미암아 끝내 결실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만큼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마련,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등의 조치가 있어야 재개될 수 있다"며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북한의 조치는 남북 사업자간 합의와 남북 당국간 합의를 위반하는 것은 물론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로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8월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중단됐으며, 북한은 천안함 사건 후인 작년 4월 말 현대아산의 외금강 주요 시설에 대한 동결조치를 집행했다.

2013년 개성공단 잠정폐쇄
개성공단이 우리측 체류인원 전원 철수로 잠정폐쇄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당분간 먼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북한이 지난 10년간 건재했던 개성공단을 문제삼고 나온 이유가 북미대화 재개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국면으로 끌고가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한 대북 소식통은 5일 "김정은이 개성공단에 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과 협상을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북한은 개성공단 문제를 큰 틀에서의 한반도 정세 아래에 있는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과 김정일의 핵개발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 미국과 협상하려던 김정일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자 김정은은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헌법에 이를 명시하는가 하면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취하는 등 핵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핵 카드를 극대화,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하려던 전략 하에 개성공단을 걸고 넘어졌다고 이 소식통은 분석했다. 이런 의도는 북한의 공식 입장을 통해서도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인혁당재건위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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